도리녀석은 원체 성격이 순둥순둥해서인지 대차게 삐쳐 침대 밑에서 밤새 농성하는 로리와는 달리 금세 제 품을 내어줬다. 불과 전 날 밤만 해도 하악질에 때릴 구석도 없는 애기 뚜드려 패던 녀석이 이젠 같은 방석에 누워 몸을 기대어 있는걸 보자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입양을 위해 트위터에 올린 꼬랑지 사진 몇 장 덕에 졸지에 스타가 되어버렸다. 짧은 시간에 감...
나는 비에 약하다. 비가 싫다. 너무너무 싫어서 울화통이 터질 정도다. 이제 겨우 5월인데 이른 장마라도 시작된 걸까. 하루 걸러 하루 폭우가 쏟아진다. 어째 맥주라도 한 캔 하고 싶은 기분인데, 늘 다니던 편의점까지 걸어가기도 귀찮다. 하여, 집에서 1분거리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장점이 없는 동네 슈퍼에 들어갔다. 평범하게 끔찍한 기분을 달래며 음료를 하...
앞선 장에서도 길게길게 두드린 바 있으니 독자제위께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우리 동네는 길냥이 천지다. 처음 마리를 그렇게 만났고, 이사온 이후로 길냥이 밥을 주고 있는 것도 근 2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엔 한줌씩 부어주던 사료도 이제는 그 양도 꽤 늘어 한번에 300g 가까이 매일 급여하고 있고, 덕분에 적어도 우리 집의 쓰레기봉투가 처참하게 ...
정말 감사하게도 도리와 로리는 음식을 크게 가리지 않는다. 뭘 줘도 맛있게 잘 먹고 먹고 나면 싹싹싹 고양이 세수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숨겨진 모습이 있다. 아마 누구나 쉽게 보기 힘들 장면이리라. 나는 이 아이들에게 로얄캐닌 인도어 사료를 주식으로 급여하고, 간식으로는 습식캔을 따서 하루에 한번씩 주곤 한다. 밤에 캔을 덜어 접시에 ...
맞다. 세상에 나쁜 고양이는 없다. 고양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옳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방만하게 퍼질러자는 도리를 와락 껴안고 형이랑 오래오래 같이 살자고 말을 걸어주면 자다 깬 목소리로 으엥하고 대답해주는 이 따끈따끈한 존재는 얼마나 사랑스럽냐. 비록 똥방귀를 껴서 분위기를 좀 망치긴 했지만. 뭐 어때. 그게 ...
저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나의 경우 절대 외출 불가 (병원 제외) 무조건 중성화 냥줍은 (가능한) 안돼 라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비난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 저마다의 생각과 사정은 다르니까. 특히 요즘에야 목뒷덜미에 약을 발라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편안해지긴 했다만 심장사상충 접종을 매...
나는 대체로 소위 말하는 ‘냥줍’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다. 당장 도움이 필요한 개체를 ‘구조’하는거라면 또 다를까, 당장 내 눈 앞에 삐약거리는 길고양이가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무작정 데려오는 것은 오히려 그 가정을 깰 수도 있고, 그 나름대로 정교하게 짜여진 거리의 질서를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고양이가 불쌍하다고 그...
고백컨대, 집에 고양이가 있어서 행복한 것과 별개로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수면장애가 심한 내겐, 새벽마다 꼭 다리를 깨물고 할퀴면서 애정표현하는 도리 때문에 늘 잠을 설치고 늦잠을 자게 되는 것은 좀 문제다. 워낙에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서 기특하지만, 덕분에 하루 두번씩 해야 하는 화장실 청소 역시 만만찮은 일이다. 매월 꽤 많은 고정비용을 ...
유골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황망한 기분을 지우지 못하고 안주도 없이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어쩜 취하지도 않고 그저 눈물만 나오는걸까. 이렇게 일상에 불쑥 들어왔다 가버린 고양이 한 마리가 사람 마음을 이렇게까지나 힘들게 만드는 걸까. 예상치도 못한 이별을 맞이하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매일 같이 술에 취해 울며 마리의 사진을 보다 지쳐 잠...
황망하리만큼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래도 이사짐이 어느 정도 정리되니 겨우 사람 사는 꼴 같아졌다. 마리는 여전히 밥을 안먹고, 온 집안에 설사똥을 흩뿌리고 다니고, 나는 그런 마리를 핑계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게 됐다. 그래 자영업자 좋은게 뭐냐. 시간 활용 자유로운 거 아닌가. 돌이켜보니 10여 년 전 집에 새끼고양이 6마리가 태어났을 때도 그랬었지...
애초에 비어있던 집이라 이사 전 청소를 핑계로 미리 열쇠를 받았고 급한 맘에 가방에 마리를 우겨담아 일단 병원부터 뛰어갔다. 진찰 결과 구내염과 탈수, 영양실조 증세가 있고, 이빨 상태로 보면 못해도 1년도 훨씬 넘은 놈인데 무게는 겨우 2키로 남짓 나갈 정도로 뼈만 앙상했다. 여태껏 길고양이를 많이 봐왔지만 이 연약한 몸으로 아스팔트 위에서 살아남으려 얼...
룸메이트와 거하게 한바탕 하고야 말았다. 사실 그 전부터 조금씩 위태롭게 균열이 가는 것이 보이던 터라,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이러나 저러나 머쓱하게 웃고 넘어갈 만한 일은 아니지. 얹혀살던 내가 나가야 되는 건 맞지. 다음날 급하게 방을 구하러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8월의 더위는 끔찍했고, 나는 그 더위보다 더 끔찍한 조건의 단칸방들을 둘러보며 그저 망...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